Our Nonghyup
고려시대 최대의 무역항이었던 예성강 하구 벽란도에서 중국 및 아라비아로 교역을 하면서 고려인삼이 최고의 특산품으로 거래 되었으며, 대부분 산지는 파주 장단지역이었다.
개성인삼이 처음 재배된 곳이 개성 인근의 파주 장단지역입니다. 조선조 주세붕선생이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1551년)하면서 인삼 재배법을 파주장단일대에 보급해 개성인삼의 주산지를 형성했습니다.
구포건삼도록(九包乾蔘都錄)에 개성의 증삼포에서 장단지역 인삼을 백삼, 홍삼으로 가공하여 국내 약재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08년 인삼의 규모와 소재지가 자세히 수록된 한국삼정요람(韓國蔘政要覽)에도 장단이 개성인삼의 본원지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재배된 파주의 개성인삼은 개성상인들에 의해 일찌감치 해외에 그 우수성을 널리 알렸으며, 오늘날 한국의 대표 특산품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고려시대 전남 화순군 동북면 유천리에 살던 홀아비 최모씨가 중병에 걸려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하였으나 백약이 무효라 이제는 황천길만을 기다리게 되었는데, 이때 효자 아들이 매일 모후산 바위 밑에 가서 신선에게 부친의 병이 완치되도록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던 어느 날, 깊은 꿈속에서 수염이 하얀 신선이 선녀와 같이 나타나 빨간 열매가 달리고 뿌리는 사람모양과 흡사한 약초를 주며, “모후산 동북쪽 기슭에 이와 같은 영약이 있으니 아비의 병을 치료토록 하라” 하고 생시와 같이 선명하게 이야기 하였다.
그 아이는 하도 신기하고 감사하여 그것을 받으려는 순간, 신선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참으로 허망한 꿈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희망을 가지고 초조한 마음으로 날이 밝기를 기다려 모후산 동북쪽 산기슭을 헤매던 중, 신기하게도 꿈에서 본 약초를 발견하게 되어 조심스럽게 뿌리를 캐고 종자를 잘 간직하여 집으로 돌아왔고, 뿌리를 정성껏 달여 아비에게 먹이자 신기하게도 병이 안치되었다. 그 후 아이는 종자를 파종, 재배를 하여 이를 점점 확장한 결과 큰 부자가 되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6년근인 파주개성인삼은 대부분 홍삼으로 가공되어 판매됩니다. 파주개성인삼 홍삼은 백상(23종)보다 많은 30종의 사포닌을 함유하고 있어 가장 다양한 약리효과를 보입니다. 또한 맛이 부드럽고 인삼향이 진하며 백태가 적고 뿌리가 단단해 탄력이 좋습니다.
민통선 북방 비무장지대(DMZ) 지역인 장단면과 임진강에 접한 감악산 기슭의 청정공기와 비옥한 토양, 서늘한 기후 등 인삼재배에 적합한 환경에서 생산됩니다. 해발 200m 임진강 해양성기후지대에서 배수가 용이하고 사질토양으로서 뿌리발달이 좋고 병해중에 강한 인삼 재배지입니다.
여름철 서늘하고 주야간일교차가 커 인삼의 사포닌 함량이 높고 뿌리의 육질이 단단하고 뇌두가 큰것이 특징입니다.